서울시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전면금지 이후로 어느새 두 달이 흘렀다. 그 두 달 간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언론에서도 이 토픽을 화두 삼아 수많은 기사를 써 왔다. 김대중 대통령 때의 체벌전면금지 이래로, 체벌에 대한 이 정도의 적극적인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의견을 내는 만큼, 아직도 찬반 대립의 갭은 좀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학생으로서, 난 부족하게나마 이번 일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내 보려고 한다.
우선, 인터넷에서 체벌에 관하여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을 둘러 보면 아직도 체벌≠폭력을 전제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체벌은 폭력인가?'에 대한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난 체벌은 폭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군대에서의 구타와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아마 돌아오는 답변은, 미성년자의 미성숙함을 근거로 체벌과 그 두 가지 사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미성년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을 미성숙이라는 새장 안에 가두고, 그들도 인권의 수혜 대상이라는 걸 잊고 있지는 않은지. 물론 미성년자들의 미성숙함을 부정하진 않는다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는 성인이 있다면 그에게도 '미성숙'을 근거로 체벌을 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문제에 다른 대책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성년자임에도 성인 못지 않게 성숙한 학생이 있기 마련이고, 성인임에도 미성년자 못지 않게 미성숙한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나이 차를 잣대로 내세워 체벌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개인차를 무시한, 안일하기 그지없는 발상 이상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위의 두 사례와 같이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도출해낼 수 있다.
두 번째로, 체벌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 난 체벌을 교육적 의미에선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피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체벌은 단순히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표면적인 교정을 불러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절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체벌로 학생들을 계도하는 것은 공포에 굴복시키고 정작 잘못을 깨닫게끔 하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정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흔히 말하여지는 '폭력의 대물림'이 발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의 공포를 겪어온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의 폭력성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동조하기에 이르기 쉽다. 또한 일각에서는 '학교에서의 체벌조차 겪지 못하면, 사회의 더한 폭력에 맞설 수 있겠는가'하는 말도 나오는 듯 하나, 되려 이러한 생각이 폭력의 대물림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체벌은 가장 비인간적이면서도 교육적 효과조차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체벌전면금지에 따르는 대안에 대해. 체벌전면금지는 너무도 상처받아버린 학생들의 불가침권리를 되찾아 주자는 건데, 대안의 부재 때문에 이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난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과연 그것이 학생들의 인권을 더 오래 쥐고 흔드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가?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 때의 전면적 체벌금지 때도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해 결국 흐지부지되고 만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교육 현장에선 대책이 없다는 말만 번복하며 체벌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오진 않았던가? 자기 권리를 지키는 법을 배워나가는 학생들에다 대고 '교실붕괴'니, '통제불능'이니 하며 튀어나오는 불만들은 되려, 얼마나 학생들이 비인간적으로 통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들이 정말 교권을 원한다면, 우선 그들이 체벌로서 부여받는 권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